에르네스토 콜나고, 86세에도 여전히 정력적인 자전거 업계의 상식파괴자
지난 2018년 2월 9일, 그는 콜나고 C64의 발표와 동시에 86번째의 생일을 자축하는 자리에 섰으며, 여전히 가족에게 이 콜나고의 경영권을 넘겨주거나 경쟁사들이 자전거의 디자인, 혁신, 감성적인 부분을 앞서나가도록 내버려둘 생각이 없어보였습니다.
에르네스토 콜나고는 자전거 디자인 및 소재 기술에서부터 루머가 난무하는 크리스 프룸의 현재 위치, 모터도핑, 피터 사간 및 이탈리아 사이클링의 미래에 이르기까지 사이클링의 모든 이슈에 대한 전문적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작년 여름엔, 그의 아내 빈센치나 콜나고와 사별했지만 에르네스토의 정신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콜나고 본사와 바로 마주한 집에 살고있으며, 그의 집 지하에서는 신형 C64 프레임이 수제작 되고 있습니다. 창고가 내려다보이는 그의 집무실에는 역사적인 프레임, 저지, 콜나고를 타고 우승을 거둔 수많은 선수들의 사진이 가득한 전시공간을 두고 있습니다.
그는 여전히 대화의 요점을 강조하거나, 경쟁업체에서 자신의 오리지널 디자인과 직감을 베꼈다고 확신할 때엔 테이블을 내려치며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기도 합니다. 예술가, 건축가 또는 패션디자이너처럼 그의 디자인과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설명할 때엔 종이에 스케치를 하며 보여줍니다.
“살아있는 한 나는 매일 콜나고 제작실에 있을 것입니다. 그 누구도 내 회사에서 나를 쫓아낼 수 없답니다”
그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의 퇴장을 꿈꾸는 라이벌 들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저는 항상 창조적인 마인드를 가진 디자이너로 지내왔으며 이런 활동들이 저를 살아있게 해 주었습니다. 평생동안 이루어낸 나의 업적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죠. 제가 자전거와 스포츠산업의 혁명을 도왔다고 생각합니다.”
콜나고 C64 : 캐비어를 가지고 있다면 스팸을 먹겠어요?
올해도 콜나고는 UAE 팀 에미리츠 에 자전거를 공급합니다. 파비오 아루는 지로 디탈리아에서 캄파뇰로 구동계로 무장한 콜나고 C64 를 탈 것입니다. C64는 1990년대 Mapei 팀이 파리-루베경기를 지배하던 시절부터 이어져온 러그드 프레임의 최신 버전 입니다.
“그것은 마치 롤렉스 같은, 시대를 초월한 작품입니다. 매우 특별한 자전거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고객들이 인지하기를 바라죠”
콜나고씨는 조만간 출시될 아주 멋진 실버 C64 디스크 프레임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몰드를 사용하여 고작 5가지 사이즈를 생산하여 라이더가 몸을 자전거 사이즈에 맞춰야 하는 다른 브랜드와 콜나고는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는 콜나고 입니다. 몇몇 브랜드는 ‘숫자게임’ 에서 우리를 이길 지는 모르겠지만 한가지 질문을 던져보죠. 당신이 캐비어를 먹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스팸을 먹을까요?”
에르네스토 콜나고는 이탈리아 사이클링 업계가 자국의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고통을 겪고 난 후에도 스페셜라이즈드, 트렉, 자이언트, 그외 글로벌 브랜드 들이 점유율을 늘리고 있는 상황과 강력하게 맞서고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최고의 혁신은 자신의 직감을 확신하며 집에서 일하는 장인에게서 나오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다른이들은 컴퓨터와 마케팅 캠페인을 가지고 있지만, 제가 60년동안 이어왔으며 오늘도 계속 하고있는 일의 극히 일부만 이루었을 뿐입니다.”
그는 도전적으로 말했습니다.
사이클링 역사의 한 가운데에 있는 콜나고
콜나고의 회사 연혁은 이탈리아 사이클링 역사와 얽혀 있습니다. 캄파뇰로의 창업자 툴리오 캄파뇰로와 함께 Scic, Molteni, Del Tongo, Alfa Lum, Mapei 와 같은 팀을 후원하며 1970년대, 80년대, 그리고 90년대 이탈리아 사이클링의 황금기를 만든 자전거를 제작했습니다.
그는 십대에 자진하여 사이클 레이스에 출전했었으며, 13세 때 밀라노의 자전거 제작사 ‘씨클리 글로리아’ 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다리 골절로 집에서 쉬는 동안 에르네스토는 휠을 빌딩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이후 그의 고향 밀라노 북부 캄비아고에서 그만의 작업실을 갖게 되었죠.
1955년, 콜나고는 피오렌초 마니 선수의 자전거 문제를 해결해 주었던 일을 계기로, 지로 디 이탈리아에서 팔리에로 마지의 보조 미캐닉으로 일하게 됩니다. 그와 그의 형제 파올로는 가스토네 넨치니, 쟌니 모타, 미켈레 단첼리, 에디 먹스 등 유명 라이더를 위한 자전거를 만들게 되는데 자전거 탑튜브에는 스폰 계약으로 인해 아직 다른 브랜드의 로고가 붙었습니다.
콜나고는 1972년 멕시코에서 에디먹스가 월드아워 레코드를 세웠던 자전거를 만들었고, 이 자전거에는 당시 구현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의 정수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 자전거는 두 대가 제작되었으며 한 대는 콜나고 전시관에 진열되어 있습니다.
1974년, 지로 디탈리아에서 쟌 바티스타 바론첼리가 에디 먹스를 거의 능가했을 때 콜나고 자전거가 처음으로 프로 펠로톤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 이후로,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라이더 중 다수가 Ace of Clubs(클럽 에이스/클로버) 로고가 장식된 콜나고 자전거를 타고 시합에서 경쟁 했습니다. 마페이 팀 역시 콜나고를 타고 1990년대를 지배했으며, 라보뱅크와 밀람 또한 콜나고에게 수많은 승리와 월드 타이틀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2010년에 콜나고는 타이틀 스폰서가 되어 부이아그 텔레콤, 유럽카, 토마스 부클러를 후원하며 투르 드 프랑스에서 성공적인 입지를 확보 했습니다. UAE 팀 에미리츠 뿐만 아니라 가즈프롬, 노보 노르디스크 및 위글 하이5 여성팀에 자전거를 공급합니다.
콜나고는 지난 30년간 페라리와 협업하여, 콜나고-페라리 한정판 자전거를 생산하였고, 페라리의 포뮬러1 기술을 사용하여 자전거 업계에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페라리의 도움으로 1986년과 1987년에 처음으로 카본 프레임을 선보였습니다.”
에르네스토는 카본 섬유 품질의 우수함을 보여주기 위해 샘플을 보이며 언급했습니다.
“콜나고의 카본섬유는 포뮬러1의 세계에서 왔습니다. 왜냐하면 콜나고의 프레임은 안전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는 설명했습니다.
“모든 카본파이버 튜브들은 겉보기엔 다 좋아보입니다. 하지만 저의 카본파이버 소리를 들어보세요. 다른 튜브들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나지만, 제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 소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하지만 사람들은 온갖 마케팅 문구들에 현혹되어 위대한 자전거와 일반 대량생산 자전거의 차이점을 깨닫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죠.”
자전거는 안전해야 합니다
콜나고는 UCI 가 자신의 혁신과 사업적인 이익을 제한하려고 시도할 때 항상 싸워왔습니다. 그는 항상 6.8kg의 무게 제한에 반대해 왔으며, 프레임은 계속 가벼워 져야 한다는 일반적인 생각들에도 반대해 왔습니다.
“프레임은 자전거의 심장입니다. 그것은 안전해야만 합니다”
라고 그는 주장합니다.
“무게를 750g 까지 줄이고 안전을 희생하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컴포넌트와 휠셋을 신중하게 선택하여 무게를 줄이세요. 저는 올해 알렉산더 크리스토프 선수에게 자전거를 만들어 주었고, 그는 스프린트 스테이지와 클래식 레이스에 참가할 것입니다. 그가 모든 파워를 쏟아붓는 상황에서 경량에만 치중한 프레임을 타는것은 바보같은 행위에요”
“다른 브랜드들은 컴퓨터의 도움을 받는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홍보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컴퓨터는 라이더가 필요로 하는 것을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입력된 데이터 기반한 디자인을 뽑아냅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기술의 진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자전거 개발의 최전선에 서 있었으며, 자전거를 만들고 판매하는 것이 비즈니스 라는 것도 잘 알고 있죠. 그러나 안전을 확보하고 명성을 얻기 전에는 판매하면 안되는겁니다. 저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루, 사간 그리고 프룸
지난 10년간 이탈리아 자전거 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콜나고의 매출도 소폭 감소 했습니다. 콜나고는 주세페 사로니가 관리하는 UAE 팀 에미리츠를 후원하는 것이 중동을 비롯한 해외 판매에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당신이 열심히 일한 증거를 세계에 드러내려면, 프로 펠로톤에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회사 에게는 아주 큰 투자이지만, 큰 시합에서 이기는 것은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루는 UAE 팀 에미리츠 에서 좋은 시즌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가 지로 디탈리아에서 빛을 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의 전성기에, 콜나고는 피터사간에게 사인했을 것이지만, 크리스 프룸에겐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피터 사간이 이기는 방식과 그의 발언을 좋아합니다. 그는 직설적이고, 정직합니다. 거짓이 없죠. 사람들은 그에게 많은 흥미를 갖고 있지만 아쉽게도 그는 캘리포니아 그 브랜드(스페셜라이즈드) 의 후원을 받고 있군요.”
“나는 프룸이 위대한 라이더가 되기 전에 이탈리아에서 경기를 할 때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안장위에서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였지만, 어쩐일인지 타임 트라이얼과 힐클라임에서 모두 빠르게 달렸습니다. 그는 자전거위에서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지만, 그것을 바로잡는것은 제가 할 일이 아닙니다. 그는 저의 자전거를 타지 않고 있죠.”
그는 오만한 듯한 어투로 말하곤, 그의 바이크 전시관으로 돌아가 일에 열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콜나고 박물관, 그리고 에르네스토의 자전거 컬렉션
콜나고 박물관은 자전거계의 루브르 박물관이자, 피렌체의 우피치, 뉴욕의 구겐하임 박물관 입니다. 그 곳에는 지난 50년간 만들어진 많은 콜나고 자전거들이 있으며, 스포츠의 역사를 알려 줍니다.
안타깝게도,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있지는 않지만, 관계자를 알고 있다면 가끔 방문할 기회가 있습니다. 아래층의 쇼룸은 새로운 자전거를 전시하는데 사용되고, 윗층은 1979년에 교황에게 수여된 황금 자전거에서부터 2018년 콜나고의 최신모델에 이르는 수백 가지의 자전거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벽에는 커다란 사진들이 걸려 있는데, 콜나고의 엄청난 발자취를 보여 줍니다. 거기에는 젊은 에르네스토가 에디 먹스의 팀 미캐닉으로 오픈탑 팀카에 앉아있는 사진과 바론첼리, 단첼리, 사로니, 톤코프 와 다른 라이더와 함께 한 사진 들이 걸려 있습니다.
우리는 콜나고씨에게 역사상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자전거를 선택해보도록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자전거들을 그의 자식들처럼 묘사하며 고민하다가, 에디먹스의 아워 레코드 기록을 수립한 모델과, 사로니의 1982년 월드챔피언 모델, 1990년대 이탈리안 팀 타임트라이얼 에어로 바이크와 파리-루베를 지배했던C40 모델을 선택 했습니다.